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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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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3. 23:16

로라드렉. to 쏠. Teatime with you.




애프터눈 티타임 가지는 로라드렉









 

 

드렉슬러는 차에 대해 잘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흥미가 없었다. 흥미로운 것, 예컨대 창이나 별, 술에 관해선 잘만 꿰고 있으면서도 차에 대해 물으면 잘 모르는데. 라고 시큰둥히 대답하였다. 그나마도 영국에 오면서 얼그레이와 다즐링 정도의 유명한 차를 마셔보았지만 그의 취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차가 아니라 그 시간이 싫었는지도 몰랐다. 매일매일 서류를 처리하고 연구에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느라 차를 마실 때 필수불가결한 여유-그의 말로 표현하자면 태평한 한가로움-는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밤샘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취향에도 맞지 않는 몹시 단 핫 초콜릿이나 커피를 주구장창 마셔댔다. 로라스는 그런 그를 조금은 질린 듯이 보았다. 꾸역꾸역 마셔대더니 기어코 무언가를 완성하곤 짙은 다크써클과 대비되는 반짝반짝함을 눈에 잔뜩 담아 로라스, 이거 봐! 하고 뛰쳐나오곤 했다.

 

“훌륭하군.”

 

로라스가 그리 말하며 웃으면,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아는 드렉슬러는 씨익 잘생긴 웃음을 그렸다. 로라스는 그 웃음을 늦은 밤이나 새벽이 아닌 한낮, 따스하고 아름다운 햇볕 아래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차에 취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라는 수식어는 로라스에게 조금 부끄러웠으므로 정정하자면 결단코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영국은 시에스타 같은 문화도 그럴 이유도 없는 환경이었기에 그 시간동안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제법 로라스의 마음에 든 이유도 있었다. 그것을 좋아하는 이와 공유하고 싶은 것도 평범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싫어.”

 

대번 뚱한 표정으로 거절하는 드렉슬러를 여러 번, 그런 드렉슬러에게 이건 어떤가하고 각양각종의 차를 우려주길 여러 번, 색깔 보고 싫어, 색이 괜찮나 싶으면 향을 맡아보고 별로, 향까지 통과하여 가까스로 한 입 마셔보면 맛없어. 라는 드렉슬러에게 그런가... 하며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기도 여러 번. 드렉슬러도 그런 로라스가 제법 안쓰러웠는지 괜한데 애쓰지 마라. 그런 말을 건네었다.

 

“애쓴다는 걸 알면 조금 시간을 내보는 건 어떤가?”

“싫은 건 싫은거라고.”

 

연구할 시간까지 줄여가며 차를 마실 필요가 어딨어. 그리 말을 덧붙이는 드렉슬러에게 로라스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물론 드렉슬러가 그런 성정인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로라스도 본래 싫다는 남에게 이것저것 권유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제 욕심 반, 그의 몸을 챙기고자 하는 이유가 반, 그런 이유로 이것저것 찻잎을 찾아보고 구해보는 노력도 결코 예사가 아니어서 조금, 아주 조금 서운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경써줘서 고맙다.”

 

그 한마디에 그마저도 날아갔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후로, 로라스는 더이상 드렉슬러에게 억지로 이것저것 차를 권유하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여전히 핫 초콜릿과 커피를 달고 살았으며 그 때문에 약한 불면증이 생겼지만, 본인이 개의치 않아했기에 로라스도 간섭 하지 않았다. 대신 해가 떠있는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드렉슬러를 위해 그가 해야할 서류를 조금씩 덜어주곤 했는데, 그 때문인지 드렉슬러는 가끔 그에게 술을 사왔다. 보통은 맥주류였으나 때때로 신기한 것을 사오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것 중 하나였다.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 병에 궁전이 그려져 있는 황금색 라벨.

 

“그게 뭔가?”

“깔루아.”

“깔루아?”

“저번에 이사 녀석과 같이 갔을 때 먹어봤는데 꽤 맛있길래.”

 

드렉슬러는 네 취향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가.”

 

로라스는 깔루아와 다른 이것저것을 꺼내 칵테일을 만드는 그의 등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언제 또 칵테일에 관심을 가진거지. 내가 차를 권유할 땐 그렇게도 외면하더니. 이사와 함께라면 괜찮은건가. ...그래도 기쁜걸. 맛있었다는 걸 나와 공유하려 해주는 걸 보면. 이것저것 생각이 들어 복잡해졌다. 드렉슬러가 잔을 두 개 들어오며 너 표정 이상해, 하고 낄낄대는 것을 보고서야 로라스는 경직된 얼굴 근육을 풀고 느슨히 미소 지었다. 사실 자기 표정이 이상하다는 자각조차 없이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건 이름이 뭔가?”

“블랙 러시안.”

“자네 것은?”

“깔루아 밀크. 둘 다 깔루아로 만든거야.”

 

로라스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마시겠네, 웃곤 건네받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진한 커피향에 뜻밖이라며 물었다.

 

“자네는 평소에 커피를 질색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질색하는 거 맞는데.”

“커피향 술은 좋고?”

“평소 마시던 것들은 너무 달아서 그래. 좋아는 하는 편이지만 토할 것 같아. 질릴만치 마신 것도 있고.”

“...그럼 핫 초콜릿도?”

“엉.”

 

그렇군. 로라스는 그 말을 술로 넘겨버렸다. 그때서야 조금 감을 잡았다.

며칠 후 모처럼 날이 화창한 날, 드렉슬러는 모처럼 오후의 티타임을 함께 해 달라고 권유받았다.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리 생각했지만 그날은 햇빛이 좋았으며 연구도 마침 하나가 끝나 한가했기에 드렉슬러는 그 요청에 응했다. 티타임은 로라스의 사무실에 딸린 작은 테라스에서 이루어졌다. 숲을 바라보는 방향이라 풍경은 평온했으며 바람 또한 선선했다. 기분이 좋아진 드렉슬러는 모처럼 로라스가 우리는 차의 향을 들여 보았고, 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동안 맡았던 차와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향이었다. 그리고 뭔지도 알 것 같았다. 익숙한 내음에 드렉슬러는 눈을 초롱히 빛내며 자신의 잔에 또르륵 정결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았다. 붉은 빛이 약간 도는 짙은 갈색이었다. 그러나 맑고 투명한. 물이나 술의 맑은 느낌과는 또 달랐다. 로라스는 반응을 보이는 드렉슬러에게 미소 지으며 잔을 건네었다.

 

“마셔보게.”

 

드렉슬러는 처음으로 차를 흥미롭게 마셔보았고, 그 결과 또한 몹시 만족스러웠다. 달지 않은 초콜릿 향이 홍차 향에 어울러져 이렇게 은은하게 어울리는구나. 목 안을 부드럽게 내려간 차는 곧 아래에서부터 몸 속에 온기를 불어넣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드렉슬러는 만족스러워져 눈을 접으며 웃었다. 몸 안에서는 온기와 옅은 초콜릿 향이 감돌았고, 접힌 눈 사이로는 따스한 햇살과 그 밑에서 입술을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웃는 그가 보였다. 완벽한걸. 정말로 흔치 않게도 드렉슬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건 이름이 뭔데?”

“루이보스 초콜라타 No. 10."

“괜찮네.”

“그런가?”

 

로라스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드렉슬러는 그런 그를 타박했으나, 여전히 눈이 접힌 채였다.

 

“왜 그렇게 환히 웃어.”

“드디어 자네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기뻐.”

“그렇다고 매일 너와 차를 마셔주겠다는 건 아냐.”

“가끔은 해준다는 소리군. 영광이네.”

“......쯧. 오래된 놈은 이래서 불편해. 뭐 가끔이라면, 나쁘지 않을 지도.”

 

게다가 햇빛 아래 네 놈이 참 잘생겨서, 라는 이유는 쪽팔리니까 말하지 말자. 드렉슬러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다시 차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향기로운 차, 따스한 햇빛, 저를 위해 차를 우리는 잘생긴 그와 함께 즐기는 여유. 그는 이 완벽함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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