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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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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1. 14:15

RIbet.







빙글빙글 돌아가는 노란 장미, 너의 잘생긴 눈썹 밑 고운 얼굴, 입술 궤적이 그리는 나비 문양, 기이한 그것의 손을 잡고 스텝을 밟았다. 아, 어두운 성 안에 나는 홀로 외로워 너를 끌어당겼다. 속절없이 끌려온 너는 풀을 발라 내 손에 철썩 달라붙고, 나는 그의 목에 입술을 박고 목을 축였다.

자, 춤추자. 조명이 반짝 터졌다. 노란 불빛이 내리는 커다란 홀에서, 길고 긴 코트 자락을 끌며 나를 이끌도록 종용했다. 노란 보타이와 빛이 안 들어오는 벨벳 셔츠, 그 위를 거미가 기어가듯 꾸욱꾹 눌러대며 자, 어서, 나를 어서 품어줘, 아가야.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단단한 피부결을 쓸어 만지자 그가 드디어 내 허리에 손을 감고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성한 스텝, 시골 청년마냥 어색한 것에 깔깔거리며 웃던 나는 어느새 당당한 귀족의 걸음에 속절없이 끌려 다녔다. 촛불이 일렁이고 너의 눈을 삼켜 나는 헤, 입을 벌리고 웃었다. 차가워? 뜨거워? 빨강과 파랑이 섞이다니 아름답구나. 자기, 내 눈의 파랑은 어때? 손가락이 거미줄처럼 얽혔다. 맞잡은 손으로 그의 눈을 찌르려다 말았다. 좀 더 즐겨야지.

이제 이름 모를 붉은 꽃, 그것이 네 위로 떨어졌다. 아-뭐더라. 유명한 꽃이었는데. 그것은 네게 꽤 잘 어울려 나는 웃었다. 멋지구나. 바닥에서 피어난 토끼들이 뛰어다녀 춤추는 우리 발에 채였다. 그 몽클한 감각이 좋아 부러 더 그것들을 더 밟으며 춤을 추었다. 너의 팔 안에서 회전하고 네 품에 안착했을 때 그의 검은 입술에 입술을 얹었다. 짜릿하게도, 그 맛은 진한 꿀을 섞은 피의 맛. 아, 씁쓸하고 달고, 마치 꼭 너 같아.

홀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너의 품과 맞잡은 두 손과 발에 채이는 토끼들로 오히려 더울 지경이었다. 땀이 흘러 화장을 지울 것 같아 나는 웃었다. 아 안 되지, 너의 앞에서 예쁘게 있지 않으면. 화려한 노란 드레스를 찢고 검은 슬립 한 장으로 네 품에 안겼다. 차가워, 따뜻해. 감각의 혼란이 손톱 끝에서 가시를 만들었다. 날카로운 그것이 네 셔츠 자락을 찢어버려서 미안해. 근데 예쁜걸. 어느새 그의 셔츠는 온통 찢어져 안 입은 것처럼 보였다. 노란 보타이가 데롱거리는 꼴에 나는 깔깔대었다.

검은 코트는 여전히 우아하고 위압적이었고, 너의 셔츠를 찢으며 얽혀 찢겨진 내 슬립은 저 굴다리 밑 매춘부 같은 꼬락서니였다. 아, 부끄러워 뺨에 열이 올랐다. 몰래 드러난 젖가슴을 네 차가운 손이 주물럭거렸다. 후아, 숨소리에 섞인 신음을 네 귀에 박으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토끼털 시트는 참 부드러웠다. 네 푸른 눈이 어둠에 가리어지고 그 너머의 눈이 시린 불빛에 눈물을 또륵, 또륵. 아직 만족할만치 춤추지 못해 심심한 다리가 네 허리에 엉겨들었다. 심심해, 놀아줘, 외로워. 나비가 내 눈에 떨어졌다. 데롱거리던 것이 결국은 떨어져 나를 어둠 속에 가리었다. 가엾어라. 누가? 춤추게 해줘. 칭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네 귀에도 전해졌는지 모르겠어. 토끼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차갑고 단단한 네 손이 내 안으로 들어와 징그러웠으나 너라서 참았다. 보라색 리본이 후두둑 떨어지고 내 다리를 칭칭 동여매었다. 좋아, 떨리는 목소리로 가냘프게 웃었다. 너라면 좋아. 너라면, 좋아. 흔들리는 시야 너머 토끼들이 교미하는 것이 보였다. 사방에서 철썩거리는 소리와 새어나오는 소리가 흘러나와 음악을 이루었다. 메인 악기는 저였다.

어느새 토끼들 대신 사람들이 크게 뜬 동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부채로 가리어진 입가, 내려다보는 시선, 말쑥이 차려입은 그네들 앞에 벌거벗고 희롱당하는 자신이 아, 부끄러운데 몹시 기분이 좋아 왈칵 흘려대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야. 나를 안고 너를 안고 일어서 못 다한 춤을 추었다. 흘러내린 보라색 리본과 빨간 리본이 다리를 감고 흔적을 남겼지만 그게 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너와 춤추고 있다니 더 이상 외롭지 않아. 자, 마지막으로 키스해줘. 입맞춤 말고. 진한 키스를 줘. 내가 널 기억할 수 있도록. 네가 날 기억할 수 있도록. 자, 어서!

흩날리는 꽃의 이름을 기억하고 촛불이 성을 불태워 가라앉히고 토끼들도 사람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그제야 내 이름이 기억났다. 아, 너의 이름도 기억났지만 모른 체 하기로 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내 욕심으로 널 이용해 버려서 미안해. 거죽을 만지며 눈물이 나오지 않는 눈으로 울었다. 거기서 행복하길, 이라고도 빌 수 없는 나를 원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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