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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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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26. 23:53

창궁. to 아스삐.







발 끝에 닿는 마루는 삐걱이는 소리도 없다. 몸이 커져도 어릴 적 그대로 차분히 닿는 감촉. -어릴 적. 맞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그 기억은 마모되고 미처 바람에 흩날리지 않은 가루 부스러기가 남았을 뿐.

"멍하니 서서 뭐하냐?"

그 기억에 그리 웃는 너는 없다. 햇빛에 찬란한 초록빛 정원조차도 빛을 바래게 만들어버리는 너. 남의 집 마루에 뻔뻔스러울만치 당연하게 서선 나에게 손을 흔드는 너. 아마 마모되기 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다. 이것은 에미야 시로의 또다른 미래. 편한 의복을 걸치고 씨익 웃는 네 모습은 한낱 건달과 다름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히도 사랑스러워서-

"어디 아파?"
"놔라, 창병."
"싫다."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물음표는 붙였지만 이미 단정조다. 피식 웃으며 놀리듯 대답해줬다.

"네 생각을 하고 있었다만. 이상한 거였군? 잘 알았다. 앞으로 이상한 생각은 배제하도록 하지."
"어 어? 야 잠깐만."

내 손을 잡는 너에게 쉽게 끌려가주고 다가온 입술에 쉽게 입을 벌리고. 네가 강요했던 약속대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창병. 나를 사랑한다는 너를 온전히 받아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런데 넌 왜 그런 표정인거지.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어떤?"
"어차피 부질 없다는 표정."
"아..."

그랬나. 다시 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단호한 표정에는 답잖게도 애틋함 같은 게 서려있어, 나는 웃었다. 

"부질 없는 것, 맞지 않나? 아아 그래도 화내지 마라."
"그럴 수 있겠냐. 아, 화내지 않는 대신 이 자리에서 엎어뜨려도 된다는건가?"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나."

정말이지 곤란하기 짝이 없는 개다. 정말로 엎어뜨리려는 그를 제지하다 얼결에 그에게 꽉 끌어안기고 말았다. 정말 곤란하군. 신의 혈통으로 받은 스테이터스를 이런데다 써버리다니. 더 곤란한 건 싫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는 나지만. 그의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한다.

"뭐 어쩔 수 없다. 내 기억은 기록이 되는 순간 이미 마모가 시작될테니. 그러나 랜서. ...쿠훌린."
"왜."
"나는 이 풍경을 사랑스럽다 생각한다. 평화 속에서 다시 내딛는 따뜻한 툇마루의 감촉, 상냥한 손길이 닿은 푸른 잔디와 아침저녁마다 시끌벅적한 식탁, 내 심장을 꿰뚫었던 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또 마주보아 안은 지금 이 순간까지."

팔의 힘이 풀렸다. 조금 멀어진 거리. 네 숨소리 대신 네 잘생긴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거리에서 마침내 하고자 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네가 대신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 말하던 붉은 궁병을, 기억했다.

"멍청한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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