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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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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9. 15:48

로라드렉. 아스삐님 백번달성표 리퀘스트.

 

 

 

 

 

 

 

 

 

 

그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 그다운 목소리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교실에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를 곧고 아름답다고 생각해 버렸다.

 

“…And he said to me. 「I can do anything for you. Except for not loving you.」 I just heard his confession like a music as far. I couldn't know that's the last with him.”

“잘 했다. 앉아라.”

 

종이 울리고 수업은 끝이 났다. 조용하던 교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다리오 드렉슬러를 흘깃거리다 곧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든 소음과 관계없이 드렉슬러는 책을 챙겨 교실을 나섰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씨익 웃었다.

 

“너도 이 수업이었어?”

“…네, 선배님.”

 

그의 웃음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평소보다도 더욱 반짝반짝거렸다. 그가 낭독했던 문장들이 귀 속에서 울려들었다. 그것을 손 끝으로 잡느라, 로라스는 늘 보던 그임에도 유독 긴장하며 대답하였다.

 

“미처 발견을 못했군. 저 수업은 그래도 들을만해서.”

“선배님의 낭독, 멋졌습니다.”

 

우러러보는 눈빛, 진심어린 말, 똑바로 맞춰오는 시선,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그런 것들을 좋아했다. 그를 일부러 폄하하지도 않았으며, 억지로 맞춰주는 기색이 역력한 다른 이들의 그것들과도 달랐다. 답답할 정도로 곧았지만 그렇기에 늘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였다. 그래서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감상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고마워.”

“다음에도 또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합동 수업, 다음에도 또 있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쉽게 됐군.”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로라스는, 그런 손짓에 수줍게 웃었다. 사내놈이 너무 수줍음을 탄단 말야. 드렉슬러는 코를 찡긋이며 웃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드렉슬러는 로라스가 자신에게만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베르토 로라스는, 온화했지만 융통성 없고 강경한 태도로 유명했다. 그런 로라스가 드렉슬러의 앞에서는 어쩐지 수줍은 아이가 되었다. 아직도, 그의 낭독하던 목소리가 울렸다.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게 말할 수 있나요?

 

“어떻게라니, 그냥 하면 되는데.”

“…그렇게 천재이신 거 티낼 필요 없습니다. 다 아니까요.”

“티낸 거 아닌데? 당연한 거잖아. 그냥 하면 돼.”

 

문득 꺼낸 말이었지만, 그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괜히 심통이 났다. 그런 로라스를 보고 갸우뚱하며 드렉슬러가 말을 꺼냈다.

 

“너도 영어 잘 하는 걸로 아는데.”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알지만, 선배님처럼 유창하게 말하진 못합니다. 선배님은 영국인과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냥 평범하게 하는 정도지.”

“그 평범하게 하는 정도가 부러운걸요.”

 

로라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조금 후에 말을 이었다.

 

“저어, 혹시 방해가 안 된다면, 조금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하?”

“역시 곤란합니까?”

 

드렉슬러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을 싫어했고 가르치는 일은 더더욱 싫어했다. 그러나 로라스는 제법 똑똑했으며 자신을 귀찮게 굴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무엇보다 늘 혼자 해내려하는 두 살 아래의 후배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기분은, 곤란한 기분을 제칠만한 어떤 가치가 있었다.

 

“어어… 뭐 좋아. 그렇지만 난 가르치는 건 잘 못 한다.”

“제가 잘 따라가겠습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한다니까.”

 

그럼 수업 끝나고 와라. 팔을 흔들며 멀어지는 등을 로라스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는 것도 같았다.

검술 수업, 창술 수업, 스페인의 역사, 기사도의 정의, 그 모든 수업을 충실히 들었던 로라스는 수업이 끝나자 드렉슬러의 방을 들르기도 했다는 것을 상기하였다. 수업을 듣는 동안 잊고 있던 설렘이 다시 그에게 다가왔다. 자주 가던 그의 방, 영어를 배우는 것, 뭐 하나 설렐 일이 없는데도 그랬다. 로라스는 문득 아, 하고 소리를 뱉었다. 영어 문장을 아름답게 읽던 그 목소리를 생각해냈다. 이국의 언어를 느긋하게 읽던 그에게 느꼈던 향기를 기억해냈다. 로라스는 간단히 책과 노트, 펜을 챙겨 그의 방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똑-, 똑-, 두 번 노크하고 안에서 그의 인기척이 들리면 문을 열었다. 방을 가득 채운 책과 종이,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창들.

 

“왔냐? 앉아 있어라.”

“네.”

 

로라스는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드렉슬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런 그의 행동이 서운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가 예의범절조차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년 전이었다. 아직도 그는 섬세하게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 등조차도 그다워 웃음이 나왔다.

 

“뭘 웃고 있어?”

“벌서 끝내셨습니까?”

 

로라스는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부탁을 승낙해놓고 계속 내 할 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드렉슬러는 의자를 끌고와 그곳에 간단한 다과를 놓고, 로라스의 옆에 앉았다. 펼친 책만큼의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

 

“그래서 뭘 가르쳐줬으면 좋겠는데?”

“발음이라든가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요. 물론 후자는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겠지만….”

“알긴 아는군. 그럼 발음인가. 음, 오늘 여기 배웠었지? 이 문장 한 번 읽어볼래?”

“I can do anything for you. Except for not loving you.”

“흠.”

 

드렉슬러가 자신의 입술을 유심히 보는 것에, 로라스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다시-. 라는 주문에 로라스는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th」할 때 네 혀가 입천장을 치고 내려오네. 거기가 아냐. 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스쳤다 들어가는 거야. 봐봐. anything.”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혀가 윗니 아래로 살짝 나왔다가 금방 숨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눈을 껌벅이던 그는 드렉슬러의 혀의 움직임을 기억하여 anything, 말해보았다.

 

“너무 길게 내밀 필요 없어. 그냥 살짝, 뭐랄까 문만 열었다 닫는 느낌으로?”

 

드렉슬러는 설명해놓고 답답하다는 듯이 머리를 헝클였다.

 

“그냥 따라해봐. anything.”

“anything.”

“anything. 좀 더 짧게.”

“anything.”

“좀 낫군. I can do anything for you.”

“I can do anything for you.”

“p와 f도 헷갈리지 말고. 두 갠 전혀 다른 거니까 아예 같은 범주에 두면 안 돼. f는 그냥 바람소리라고 생각해 버려. 참았다가 입술 사이로 탁 터져나오는 느낌으로 하면 돼.”

“por.”

“for.”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손을 가져다 자기 목젖에 대었다. 로라스는 편안히 손을 올렸다가,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박동 소리에 조금 당황하였다. 왜 당황했는지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por. 목이 울리지? 이건 소리야. for. 이건 어때?”

“목이 끝에만 울리네요.”

“그렇지. 울리는 건 r 때문이야. f는 안 울린다고. 이건 입 안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야. 알겠어?”

“알 것 같습니다.”

“해 봐.”

“for. for you.”

“괜찮군. 처음부터.”

“…I can do anything for you.”

“처음보단 훨 괜찮네.”

“감사합니다.”

 

드렉슬러는 씨익 웃었다. 그가 흘낏 시계를 보자, 로라스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한 문장 배웠을 뿐인데, 어느덧 10분 쯤 지나있었다.

 

“언제까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을쎄다. 너 매일 올꺼냐?”

“선배님께서 괜찮으시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그럼 너무 길게 할 필욘 없겠지. 하루 30분 정도만 하자. 대충 두 세 문장 배우겠군.”

 

30분은 로라스에겐 너무나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굳이 토를 달진 않았다. 드렉슬러가 개인 연구에 얼마나 열중하는지 아는 그로선 더 시간을 달라고 아이처럼 떼 쓰고 싶지 않았다. 매일 30분, 그것도 그의 입장에선 의외일만큼 시간을 써주는 것이니.

 

“왜, 서운하냐?”

“…제가 표정 관리를 못 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네, 좀 더 선배님과 오래 있고 싶어요.”

“으엑, 사내자식이 그러면 징그럽다.”

 

진심으로 몸서리치는 드렉슬러에 로라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직 소년다운 큰 눈이 드렉슬러를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그게 마치 비 맞은 강아지 같아 드렉슬러는 뒷목을 긁적였다. 비 맞은 강아지라면 차라리 혀나 쯧 차고 지나갈 테지만, 알베르토 로라스는 그저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자신과 같이 있고 싶다고, 드렉슬러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할 낯간지로운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느냐 이 말이다.

 

“…그렇다고 쳐지진 말고.”

“네에.”

“쯧, 아, 여튼 다음 문장 넘어가자. 읽어봐.”

 

방금까지 우울한 낯을 하고 있었던 로라스는 그런 드렉슬러의 모습에 또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사람을 상대하는 걸 귀찮고 어색해 해도, 아니 그렇기에 자신을 위해 한 마디라도 해줄 때, 자신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로라스는 책을 보고 문장을 읽었다. 드렉슬러가 읽었었던 느낌을 떠올렸다.

 

“Except for not loving you.”

 

Except for not loving you. 아름다운 말이라고 로라스는 생각했다. 평범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I can do anything for you라는 문장, 그것을 더욱 반짝거리고 가치 있게 만드는 말. 널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어. 널 사랑하지 않는 걸 빼고 말이야. 소년 같으면서 한편으로 진실하게 말하는 청년 같은 그 말을,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말로 듣고 싶었다. 그냥, 그랬다.

 

“선배님은 어떻게 읽나요?”

“Except for not loving you.”

“아까 문장이랑 이어서 읽어주시겠습니까?”

“아? 뭐 어려운 건 아니니. 「I can do anything for you. Except for not loving you.」”

 

아아. 강의실에서 들었던 그 느낌이었다. 맑진 않지만 깊고, 무겁진 않지만 은근한 향기가 나는 말. 고작 이국의 말을 읊었을 뿐인데 그러한 감각이 느껴지는 게 신기해, 로라스는 눈만 느릿하게 깜박거렸다. 무어라 말하는 드렉슬러의 얼굴이 보였다. 푸른 잿빛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눈에서 초록이 섞여 빛났다. 짙은 주홍색의 속눈썹이 그 초록과 대조되어 선명해졌다.

문득 조물거리는 그의 입술로 눈이 갔다. 색소가 옅은 얇은 입술. 입술을 오므릴 때마다 짙게 지는 일정한 간격의 세로 주름. you를 말할 때 톡 튀어나오는 윗입술은 앞의 loving과 이어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집중 안 하냐, 알베르토 로라스.”

“……아. 네, 죄송합니다 선배님.”

“한눈을 팔다니 너로선 드문 일이로군.”

 

드렉슬러는 투덜대면서도 더 이상 별 말 하지 않았다. 로라스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잊고, 다시 그의 수업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 마음이 어지러웠다. 싱숭생숭하다는 것이 적절할까. 나는 뭘 넋 놓고 보고 있었던걸까. 그 소록소록 기분 좋았던 감각은 무엇이었을까. 「I can do anything for you. Except for not loving you.」 귓가에 다시 그 말이 울렸을 때, 로라스는 다시 드렉슬러의 푸른 눈을 지나 정갈한 입술이 시야에 선명하게 박히는 것을 느꼈다. 사랑을 말하는 입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입술-.

 

“로라스?”

“…네?”

“정말 이상하군. 너 어디 아프냐?”

 

드렉슬러는 통 집중하지 못하는 로라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초점이 어딘가 풀려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로라스는 옷자락을 쥐어잡고 떠듬떠듬 말했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 저, 제가 부탁드려놓고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래라. 오늘 넌 상태가 별론 것 같다.”

 

드렉슬러는 큰 아쉬움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매사에 성실하고 열심인 녀석 답지 않게 자꾸 멍해지는 게 이상했다. 뭐, 나도 연구할 시간이 늘어나니 좋고. 로라스는 책을 챙겨 꾸벅 인사하고 드렉슬러의 방을 나섰다. 문이 탁 닫히는 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차가운 복도에 서있으니 그제야 제 심장이 조금 빠른 것이 느껴졌다. 나는 왜.

 

‘나는 왜? 왜 때문에?’

 

그것이, 알지 못한 감정에 두근거렸던 처음.

그리고 그는 이제 졸업한다. 수련 시간 외에 언제나 편한 사복을 즐겨 입던 그는 오랜만에 정복을 입었다. 단정하게 단추 끝까지 잠긴 차림새가, 그를 낯설고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그에게 꽃다발을 건네면 그가 씨익 웃었다. 고맙다. 그렇게 웃는 그가 사랑스럽고 멋졌다. 로라스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시선을 맞추고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좋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쭈욱.”

 

친애와 애정을 넘어 더욱 깊이 있고 다양한 색을 가진 그 말. 다리오 드렉슬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다. 그는 눈을 조금 깜박이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뒷목을 매만지다가, 이윽고 그 손을 로라스의 머리에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비슷해진 신장, 비슷해진 눈높이는 그런 행동을 조금 어색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로라스는, 언젠가 그에게서 처음 인정을 받았을 때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터무니없는 말을 인정해주었다.

 

“나중에 다시 보자.”

 

고백에 대한 대답도 아니었고 기약도 없는 말이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멀어지는 그의 그림자를 보면서, 로라스는 웃었다. 웃을 수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언젠가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기에 웃는 낯으로 그를 보낼 수 있었다.

벌써부터 그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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