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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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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3. 23:17

윌라드렉. 마알님과 교환하는 연성.

 

 

 

 

 

“칵테일 말입니까? 당신이?”

“그렇다니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그의 초대를 받아들여 집을 방문했을 때, 장을 가득 채운 갖가지 술에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칵테일을 만들어 마실 정도로 좋아할 줄은 몰랐군요. 혼잣말이었지만 그것을 들은 드렉슬러는 코웃음쳤다.

 

“최근에 취미를 들였지.”

“갑자기 말입니까?”

“얘기하자면 긴데.”

“궁금하군요.”

 

윌라드는 의자를 작게 마련된 바의 의자를 꺼내앉았다. 나는 들을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라는 그 태도에 잠시 흠, 소리를 내던 드렉슬러가 말을 꺼냈다.

 

“저번에 바에 혼자 갔었는데 바텐더가 시키지도 않은 예쁘장한 걸 주지 않겠냐.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저쪽 신사 분이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는 거야.”

“…신사라고요?”

“그으래. 남자가, 남자한테, 그것도 나한테 작업을 걸었다고.”

 

말도 안 된다는 어조였지만 드렉슬러의 표정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윌라드는 그런 드렉슬러에 무언가 곤란함을 느꼈다. 그런 그의 심정은 모르고, 드렉슬러는 데킬라와 레몬 주스를 꺼내고 그레나딘 시럽이 어디 있더라, 하며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 예쁘장한 게 뭐냐고 물어보니 세뇨리타라는 칵테일이더군.”

“……당신 같은 건장한 남자에게 그런 이름의 칵테일을 선물하다니.”

“그래 뭐 보통 녀석은 아니지.”

 

그리고 그런 곳보다 말이야, 나를 처음 볼텐데 한눈에 에스파뇰인 걸 알아봤단 말이지. 당신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와 내 여자가 되라-라는 여러가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재밌지 않나?

 

“그래서 그걸 마셨습니까?”

“마셨지. 맛있긴 했는데 너무 주스 같달까. 뒷맛도 텁텁하고.”

“……그래서 그 남성 분과는,”

“하? 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당연히 반죽여놨지.”

 

그냥 무시하려 했는데 이 자식이 내 허리를 쓰다듬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별 거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는 드렉슬러에게, 윌라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평생 말할 수 없겠군요. 한편으론 칵테일만 받아먹고 작업 건 남성을 반죽여놨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드렉슬러다웠다. 제멋대로 구는 그가 사랑스러워 보인다고 하면 역시 콩깍지겠지.

마침내 그레나딘 시럽을 찾은 드렉슬러는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글래스와 잘게 부순 얼음을 꺼내었다. 데킬라, 레몬 주스, 그레나딘 시럽, 얼음을 섞어 글래스에 따르고 레몬을 얇게 썰어 장식까지 해놓으니 완성된 모양새가 제법 예뻤다. 색깔을 빛에 비추어보며 드렉슬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게 세뇨리타입니까?”

“아니. 데킬라 선셋.”

“경의 머리색과 닮았군요.”

“뭐?”

 

드렉슬러는 푸흐흐, 웃었다.

 

“별로 그런 걸 노린 건 아닌데 말이야. 굳이 말하면 이름이 맘에 든달까.”

“이름, 말입니까?”

“선셋.”

 

해가 진 후에는 나의 시간이지. 나의 별을 찾아다닐.

드렉슬러는 벌컥 들이켰다. 상큼한 레몬, 그리고 미세한 석류의 단맛이 혀를 감고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다 먹어갈 때 쯤엔 이제 밤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조금 소년마냥 감상적이어서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고 드렉슬러는 술을 몇 개 꺼내었다. 화이트 럼, 바카디 151, 크렘 드 카시스. 셰이커에 넣고 흔들고 글래스에 따르고 얼음을 몇 개 넣었다.

 

“그리고 너에게 줄 건 이거야.”

 

투명한 검붉은 색 칵테일, 그 위에 지핀 푸른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잔을 만지면 뜨거움이 남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슈터니까 쭉 들이켜. 그렇게 말하는 드렉슬러를 일그러진 잔 너머로 보며 한 입에 마셔넣었다. 약간의 설탕 시럽, 그리고 그것으로는 감출 수 없는 무자비하게 속을 태우는 술.

 

“네놈에게 어울리는 술이지. 파우스트.”

“…독하군요.”

“뭐 어때. 넌 취하지도 않잖아?”

 

드렉슬러가 낄낄거렸다. 윌라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속을 태우고 난 술은 온 몸으로 피가 따뜻하게 돌게 만들었다. 어깨에 힘이 빠지는 그 기분 좋은 안온함, 윌라드는 떠오른 생각을 넌지시 건넸다.

 

“그럼 당신은 나의 메피스토펠레스입니까?”

“하? 그딴 한가로운 놈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라고.”

“후후.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끔씩은 바라곤 합니다. 당신이 온전히 내 품 안에 있는 인간이라면 좋을텐데, 하고. 언제 비었느냐는 듯 새로 만들어준 파우스트를 만지작거렸다. 자유로운, 찾아 방랑하는 별처럼 저 멀리 있는 존재. 뚜렷한 목표의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도, 그곳이 너무나 달라서. 인간의 정점에 서길 원하는 자신과 하늘의 저 높은 곳을 바라는 그와.

 

“당신도 마시지 않으시렵니까.”

 

윌라드는 파우스트를 드렉슬러에게 내밀었다. 드렉슬러는 잔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독한 술에 그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고정되는 시선을 누르며 한숨처럼 말하였다.

 

“당신이 나의 파우스트였다면 좋았을텐데.”

“내 쪽에서 사절이야. 그런 모자란 놈하고 비교하지 마라.”

 

이몸은 천재라고. 악마와 계약할 필요 따위 어디에도 없잖아? 자만심이라기엔 너무나 확고한 말. 올곧게 반짝이는 눈빛. 윌라드는 그것을 안주 삼아 파우스트를 쭉 들이켰다. 끊임없이 채워지는 마법의 술잔 같았다. 드렉슬러의 입술이 닿았던 부분, 왠지 따뜻하다는 착각에 기분이 좋았다. 취할 리 없을텐데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렉슬러는 자기 몫의 데킬라 선셋을 마셨다.

 

“네가 언젠가 네 야망을 이루면, 그땐 다른 것을 만들어주지.”

“기대되는군요.”

 

이제 어엿한 밤이었다. 깊어가는 어둠 속에 별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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