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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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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3. 23:17

XX드렉. 드렉슬러 생일 축하글.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전력 60분.

 

 

 

 

 

 

 

 

아침부터 야단이었다. 드렉슬러가 출근 후 가장 먼저 본 것은 회사 현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두 소녀였다. 여기서 뭐해? 드렉슬러는 성큼성큼 걸어가 말을 걸었다. 안절부절하며 서있는 모습들이 퍽 이상해보였던 까닭이었다.

 

“아, 드렉슬러 아저씨.”

“여전히 늦어요, 드렉슬러 경.”

“잔소릴 하려고 여기 서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겠나요. 누구처럼 한가하진 않다구요. 샬럿.”

“네, 언니. 저, 저기 드렉슬러 아저씨. 여기 선물이요.”

“선물?”

 

드렉슬러는 눈을 꿈벅였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살아오면서 선물 받아본 일은 별로 없는데 말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꼬마 아가씨들의 말에야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아하, 하고 말을 내뱉었다.

 

“오늘이 생일이라고 들어셔서… 그래서…”

“아, 그래? 오늘이 내 생일이었어?”

“자기 생일 정도는 기억하시라구요.”

“꼬마 아가씨, 너도 나이가 들면 생일 같은 건 무심히 넘어가게 돼.”

“읏, 어린애 취급 말아요!”

“그래그래, 고맙다.”

 

드렉슬러는 큰 손으로 샬럿과 마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수줍게 웃는 샬럿이나, 뾰루퉁해 있지만 그 손을 거절하지 않는 마를렌이나 퍽 귀여웠다. 조그만 선물과 아기자기한 편지지를 받아들고서 드렉슬러는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고 천장에서 툭 떨어져 옜다, 하고 선물을 던져놓고 가는 호타루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얼굴 정도는 보고 주든가…….”

 

연구실에 도착하고 불을 켰다. 방은 늘 그렇지만 어지러웠고, 먼지가 쌓이지 않은 곳보다 쌓인 곳이 더 많았다. 불마녀가 뭐라 하기 전에 한 번 치워야할 지도. 드렉슬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책과 서류를 꺼내들었다. 늦게 잔 덕에 곧 졸음이 왔다. 눈을 비비다 안 되겠다 싶어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앨리셔와 루시를 만났다.

 

“아, 드렉슬러 경.”

“오랜만인 것 같네요 드렉슬러 경!”

“안녕. 오늘 학교 일찍 마쳤어?”

“네에. 마침 잘 만났네요, 생일 축하드려요.”

“어, 고맙다.”

 

드렉슬러는 앨리셔가 건네는 선물을 받아들었다. 책인게 확실한 포장을 보며 드렉슬러는 푸흐,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드렉슬러 경이 좋아할만한 걸로 골라봤는데 맞으실 지는…”

“잘 읽으마.”

“네.”

 

앨리셔는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루시 또한 선물을 주었는데, 어쩐지 귀만 하얀 제법 커다란 곰인형이었다.

 

“……곰인형?”

“뭘 드려야 할 지 모르겠는데 마침 그게 드렉슬러 경을 닮았길래 사와봤어요!”

“으음… 다 큰 남자가 집에 곰인형을 두고 있으면 좀 무섭지 않냐?”

“문제 없어요!”

“어… 고맙다.”

“헤헤, 뭘요!”

 

드렉슬러는 자기 몫의 커피와, 앨리셔와 루시가 주문하고 있던 스무디까지 계산하고 온 후 책과 곰인형을 들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어느덧 선물이 제법 쌓였다. 이런 적이 없었던 드렉슬러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묘하게 간질간질함을 느꼈다. 이런 것도 제법 좋을지도. 그러나 곧 회의가 있음을 떠올린 드렉슬러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오후에 회의가 있었지. 나는 참가해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타라에게 쪼이기 싫었던 드렉슬러는 서류를 넘겼다. 커피로도 졸음을 이기지 못했던 드렉슬러는 급한 서류를 다 처리한 것만 확인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드렉슬러 경, 회의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만 깨시는 게 어떨까요.”

 

낯선 목소리에 드렉슬러는 겨우 잠을 깼다. 얼굴을 잘 볼 수 없었던 드니스가 서있었다.

 

“뭐야… 어쩐 일이야?”

“회사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습니다. 어서 일어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드렉슬러는 시계를 보았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회의 15분 전이었다. 아오. 드렉슬러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를 챙기고 있자니 드니스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선물상자였다.

 

“…너한테까지 받을 줄은. 어쨌든 고맙다.”

“천만에요. 그럼 다음에 뵙죠.”

 

드니스가 자리를 뜨고 드렉슬러도 곧 연구실 불을 끄고 나갔다. 한숨 자서 머리는 어느 정도 개운해졌다. 그래도 역시 회의는 싫어. 드렉슬러는 회의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브뤼노부터 윌라드, 다이무스, 타라, 로라스, 자네트까지 모두 엄숙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났냐?”

 

평소에도 화기애애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침중한 얼굴로 앉아있는 일이란 좀체 보기 드물었다. 설마 안타리우스가 습격하기라도 한건가? 곤란한데. 제일 먼저 처치해야 할 일은 생각하며 드렉슬러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무슨 일이야 있지.”

“그러니까 그게 뭔데.”

“자네 생일이지!”

 

침중한 얼굴을 하고 있던 브뤼노가 돌연 콧수염을 당기며 명랑하게 말했다. 윽, 중년에게 명랑하게라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토 나오는군. 그러나 드렉슬러는 곧 생일이라는 말에 눈을 꿈벅였다. 그러니까- 내 생일인 게 큰일이라고?

 

“둔하긴, 아직도 눈치 못 챘어? 오늘 회의 당신 생일을 위한 거였다고.”

“생일 축하합니다, 드렉슬러 경. 다이무스 경도 말 좀 하세요.”

“……축하한다.”

“생일 축하하네, 드렉슬러! 친우의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어 영광이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지요. 다음 생일도 무사히 맞이할 수 있길.”

 

긴장감이 쫙 풀어졌다. 드렉슬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당혹스러웠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어느새 테이블 위를 꽉 채운 케이크, 간식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선물 꾸러미를 보며 드렉슬러는 웃었다.

 

“고맙다, 짜식들아.”

 

 

 

 

 

 

 

 

 

드렉슬러는 타라에게서 받은 종이 가방에 선물을 한가득 챙겨 집으로 향했다. 손이 좀 버거울 것 같았지만, 가는 길에 케이크와 포도주를 한 병 샀다. 어쩐지 콧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이제 막 시작한 가을의 냉기가 집 안에 서려있어 일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는 웃는 낯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달칵, 열쇠 돌리는 소리에 반응해 침실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드렉슬러는 선물과 케이크를 침대에 놓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녀왔어, 드렉슬러.”

 

형체가 가만히 눈을 떴다. 언젠가 총명하게 빛났던 푸른 눈은 무기력함에 찌들려있었다.

 

“오늘 네 생일이라고 선물 많이 받았어. 축하말도. 케이크도. 한번 열어보지 그래?”

“……내버려둬.”

“참, 오는 길에 와인도 하나 사왔어. 스페인산이라고 해서 사왔는데 당신 입맛에 맞으려나.”

“내버려 두라고.”

 

드렉슬러는, 아니 그의 클론은 입꼬리를 더욱 끌어당겨 미소를 지었다. 그는 드렉슬러의 목을 가만히 쥐어들었다. 숨이 턱 막혀왔지만 드렉슬러는 고집스레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봤자 넌 가짜야.”

“그리고 그걸 아는 건 너밖에 없지.”

“클론인 주제에.”

“당신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그렇지?”

 

클론은 드렉슬러의 목을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흡이 가파오른 드렉슬러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가만히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아아, 단 소리야.

 

“당신은 내 것이야 해. ‘나의’ 오리지널인 걸. 그걸 아는 것도 나로 충분해.”

 

드렉슬러는, 눈을 감아내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시트를 꾹 움켜쥐는 것뿐이었다.

 

“Feliz cumpleaños, Drex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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