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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렌탄도

창궁 및 궁른. 로라드렉 및 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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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7. 22:25

로라드렉. 고백데이를 맞이하여.

 

 

 

드렉슬러, 그 때를 기억하나? 학교 뒷쪽 호수를 빙 돌아가 동산에 올라 별을 보았던 것. 갑자기 그 때가 생각나. 자넨 몰랐겠지만, 난 그때부터 자네를 좋아하고 있었거든. 호수를 따라 돌아가던 길에 나란히 선 자네 손이 잡고 싶었네. 그런 간지러운 기분은 처음이어서 당황했지. 이게 뭘까 하고 말이야. 늘 원리원칙에 따르며, 그래 남들 말하긴 강철 같이 살아왔던 내게 그것은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어. 그래도 기분 나쁘진 않았지.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자네의 팔, 조금 둥글게 말린 손가락이 몹시도 예뻐 보였거든. 음, 오해할까봐 하는 말이네만 결코 여성스럽다는 말은 아니네. 화내지 말게나. 그만큼 나를 설레게 했단 뜻이야. 그 당시의 나는 그걸 몰랐고, 그렇기에 자네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았으니.

호수 끝에 다달아 동산을 올라가며, 자네는 이렇게 말했지. 이곳에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처음이니 영광스러워 하라고. 그 말에 채 미소가 지어지기도 전에 자네가 내 손을 덥석 잡았을 때, 난 정말로 깜짝 놀랐다네. 그게 자네한텐 화난 걸로 보였었다니 참으로 유감이지만. 그 당시의 꽤나 무뚝뚝하던 나는 그런 오해를 푸느라 애를 먹었고, 자네는 미덥지 못해하면서도 넘어가 주었지. 고맙게 생각하네.

어쨌든 그리 올라간 동산 위의 밤하늘은 몹시도 만족스러웠네. 아직도 그 풍경, 그 감각이 잊혀지질 않아.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어. 푸르게 빛나는 밤하늘, 제각각 존재감을 드러내며 총총히 놓여진 별. 조금은 차갑게 뺨을 스치는 바람과 한 뼘도 채 안 된 곳에 놓인 자네의 손, ……내 오른편에서 웃고 있던 자네. 다리오 드렉슬러.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네. 물기가 남아 내려앉은 머리카락, 흰 머리카락 밑으로 추위로 하얘진 귓바퀴와 붉어진 뺨어리. 난 자네 눈동자가 그리 시리도록 빛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푸른 눈에 별을 가득 담고 웃는 자네는, 아. 정말로 아름, 다웠다네. 정말이야. 자네가 왜 그리 별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어. 그날 내가 자네를 보는 것처럼 자네가 별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날마다 점호를 속이고 별을 보러 가는 게 당연했지. …내 별은 하늘의 별, 이라기보단 자네지만 말이야. 자네는 이런 말 싫어하겠지만, 정말이야. 그 후 내가 교내에서 입상했던 시가 사실 자네에 대한 시였다면 이해하겠나. 모르는 자들이야 그저 내게 이런 감성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감탄했지만 말이야. 아니 사실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어. 자네가 없었다면, 내가 자네에게 설렘을 느낀 그 순간이 없었다면 결코 그런 시를 쓸 수 없었겠지. 조금은 감사해. 그 이후로 심하게 앓아야 했지만 말이야.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은, 내가 감당하지 못 할 정도였다네. 그 감정을 인식하기까지의 고뇌와 부정, 신을 따르는 그 어린 날의 제가 사랑한 것이 존경하며 따르던 남자인 것에, 그가 이런 저에게 조금도 관심 없을거라는 생각에 나는 끊임없이 절망 속을 헤엄쳤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특히 자네에 들키지 않으려고 평소의 나를 연기하는 게 무엇보다 괴로웠지. 당장이라도 자네에게 무릎 꿇고 이 감정을 받아들여달라고 하고 싶은 것을 참고, 대신 자네를 조금이라도 닮은 여성들을 찾아내어 곁에 두었지.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자네는 날 비웃겠지?

결국 이 감정을 인정하고, 자네가 받아들여줄 리 없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고, 몇 번이나 나는 그의 친우일 뿐이라며 되내었었다. 그래, 이게 자네가 아는 나이겠지. 그 상태로 몇 십 년동안, 지금까지 자네 앞에 섰었네.

그리고 사실, 아직도, 이것을 과연 내비쳐도 되나 모르겠네. 숨기는 덴 지쳤지만 여전히 자네 곁에 있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럴 수 있다네. 그러나 나는 아주 작지만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한걸세. 자네에게 고백한 그 사람을 거절했다기에. 내가 있어 거절했다고 믿고 싶어졌기에.

……드렉슬러, 나는 곧 떠나. 아마 몇 개월이 걸릴걸세. 운이 나쁘다면 일년이 넘을 지도 모르지. 갔다온 후에도 자네가 여전히 나를 잊기 않았기를 바라. 오랜만에 보는 나를 보며 잘 갔다왔냐고 묻는 자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자네가 내게 있어 유일한 사람이듯, 자네에게 내가 유일한 사람이길 기대하면서 말이야.

그때가 되면 이것을 건넬 용기가 날까.

 

 

 

 

 

 

“병신 새끼.”

드렉슬러는 종이를 왈칵 구겼다. 우습게도 눈물이 나왔다. 멍청한, 멍청한 알베르토. 유려한 글씨가 눈물에 번져갔다. 아, 안 되는데. 생각해도 손도 눈물도 어찌할 바 모르고 그저 번져가 점차 흔적만 남아가는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리 예쁜 말도, 진심을 담은 글도 필요없는데. 그저 살아있어 주었더라면,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더라면 그걸로 충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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