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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2016. 2. 19. 19:57로라드렉. 안개. to 랼님.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안개 낀 침엽수림을 지나 겨우 당도한 절벽 위에서 드렉슬러는 한숨을 내쉰다. 잉글랜드의 안개는 자비가 없다. 스멀스멀 마음에도 끼이는 안개를 어쩔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두었다. 감정에 침잠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바다는 발 밑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왔던 곳. 틀림이 없는데도 어쩐지 아직 숲 속에 있는 기분. 그러나 그 기분에까지 휩쓸려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이다. 물에 빠진 소리조차 안개가 먹어버리겠지만. 고민한다. 돌아갈까, 조금 기다려볼까. 그리고 감정의 결정에 따른다. 젖은 풀을 뭉개고 다리에 휴식을 선사한다. 그제야 피로가 몰려와 눈꺼풀이 꿈벅, 드렉슬러는 나무에 기대 한 숨 자기로 한다.
따뜻해.
그 감각이 뇌를 일깨우고 눈꺼풀을 움직였다. 어서 눈을 뜨라고 떠서 손에 닿는 이 감촉의 주인을 확인하라고 아우성쳤다. 몸을 서서히 젖게 하던 안개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것과 동시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오직 나만을 가득 담은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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